Seoul

졸업

2002년초, 나는 간신히 대학교를 졸업했다. 첫 세 학기를 전공 외의 다른 일들에 빠진채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계절학기를 빽빽히 채워 수강한 덕에 정규기간 내에 건축공학 학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아직 건축 설계사무실에 취직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학생으로 몇군데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는 해봤지만, 풀타임으로 하고싶은 경험은 아니었다.

그 대신 이미 졸업하기 전부터 들락거리던, 대학교 방송국 출신 친구들이 운영하던 작은 디자인 에이전시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웹사이트 제작 프로젝트 한두개가 끝나갈 무렵,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몇몇 건축과 선후배들은 대학생때 이미 방학을 이용해 유럽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건축가들의 작품들을 실제로 돌아보는 여행은 항상 건축과 학생들의 로망같은 것이었다.

당시에 이미 많이 활성화 되어있었던 인터넷 블로그에서 배낭여행 선배들이 포스팅한 여행기들을 보면서 꿈은 부풀어 갔다. 유럽 철도를 자유롭게 이용할수 있는 티켓을 가지고 유럽대륙을 누비는 배낭여행은 내 인생 일대의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우리 회사의 대표였던 류임상 친구는 마지막으로 함께한 점심식사 자리에서 여행 경비에 보태라며 80만원을 쥐어주었다. 당시 회사의 재정적 상황을 떠올리면 그의 진심은 알고도 남을만 했다. 내가 긴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소문을 들은 막내외숙모도 여행경비를 보태주셨다.